에도아르도 만자로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에두아르도 만자로티는 이탈리아의 펜싱 선수로, 1936년부터 1960년까지 다섯 차례의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 6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에페,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1961년 은퇴 후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으며, 1972년까지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에서 펜싱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51년 지중해 게임 메달리스트 - 바이람 시트
튀르키예 레슬링 선수 바이람 시트는 1952년 올림픽 금메달과 1954년 세계 선수권 은메달을 획득하고 1956년 올림픽 4위 후 은퇴, 프랑스 레슬링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에도아르도 만자로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선수 정보 | |
이름 | 에도아르도 만자로티 |
원어명 | Edoardo Mangiarotti |
로마자 표기 | Edoardo Mangiarotti |
본명 | Edoardo Mangiarotti |
국적 | 이탈리아 |
출생일 | 1919년 4월 8일 |
출생지 | 이탈리아 왕국 레나테 |
사망일 | 2012년 5월 25일 |
사망지 | 이탈리아 밀라노 |
신장 | 알 수 없음 |
체중 | 알 수 없음 |
별칭 | 알 수 없음 |
별명 | 알 수 없음 |
학력 | 알 수 없음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펜싱 경력 | |
국가 | 이탈리아 |
종목 | 펜싱 |
주종목 | 에페, 플뢰레 |
사용 무기 | 알 수 없음 |
사용 손 | 왼손 |
활동 연도 | 알 수 없음 |
소속팀 | 알 수 없음 |
코치 | 주세페 만자로티 |
전 코치 | 알 수 없음 |
은퇴일 | 1961년 |
최고 랭킹 | 알 수 없음 |
현재 랭킹 | 알 수 없음 |
참가 대회 | 알 수 없음 |
우승 | 알 수 없음 |
FIE 랭킹 | 알 수 없음 |
최고 순위 | 알 수 없음 |
최고 기록 | 알 수 없음 |
메달 기록 | |
올림픽 | |
세계 선수권 대회 | |
지중해 게임 |
2. 어린 시절
만자로티는 1919년 롬바르디아주 레나테에서 이탈리아 펜싱 국가대표 선수이자 이탈리아 선수권 대회 에페 부문 17회 우승자인 주세페 만자로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형인 다리오 만자로티도 194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한 펜싱 선수이다.
만자로티는 11세 때 이탈리아 주니어 펜싱 선수권 대회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했다. 1935년에는 16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펜싱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며 코치는 그의 아버지인 주세페가 맡았다. 이듬해인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선수 경력 첫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에페 단체전에서 잔카를로 코르나자메디치, 사베리오 라뇨, 프란코 리카르디, 잔카를로 브루사티, 알프레도 페차와 함께 스웨덴팀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선수로 복귀한 만자로티는 1947년 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194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이듬해 런던에서 열린 194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에페 개인전 동메달, 플뢰레와 에페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에 형인 다리오도 참가했으며, 에페 단체전에서 두 형제가 한 팀으로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다리오는 플뢰레 단체전에는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1952년 하계 올림픽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참가한 만자로티는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형인 다리오 만자로티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 에페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 만자로티를 꺾었던 스위스의 오스발트 차펠리를 꺾었다. 플뢰레 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여, 이탈리아 펜싱 대표팀이 1952년 올림픽 펜싱 메달 순위 1위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만자로티는 1956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열린 195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자신의 4번째 올림픽 출전을 이뤄냈다. 이 대회 에페 개인전에서는 카를로 파베시가 금메달, 주세페 델피노가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만자로티가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만자로티는 델피노, 파베시와 함께 에페, 플뢰레 두 단체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만자로티는 1958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1958년 세계 선수권 대회 플뢰레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만자로티는 1961년에 현역에서 은퇴했고 1972년까지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의 펜싱 전문 스포츠 기자로 일했다. 1966년에는 알도 체르키아리와 함께 펜싱 입문서인 《검술에 대한 진실》(''La vera scherma'')을 펴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이탈리아 펜싱 연맹과 국제 펜싱 연맹 위원을 지냈다.
3. 초기 펜싱 경력
1937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에페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1938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의 피에슈탸니에서 개최된 1938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에페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 이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세계 각지의 펜싱 대회가 중지되어 선수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4. 1945년~1950년 경력
1949년 4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194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에페와 플뢰레 단체전 금메달, 플뢰레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50년 7월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195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에페와 플뢰레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고, 1951년 6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195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에페 개인전과 플뢰레 단체전 금메달, 에페 단체전과 플뢰레 개인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5. 1952년 올림픽
6. 1956년 올림픽
7. 1960년 올림픽
1960년 모국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1960년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만자로티는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참가했으며, 당시 이탈리아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서 피오렌초 마리니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플뢰레 단체전 결승전에서 빅토르 자다노비치가 이끄는 소련팀에게 패하여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남자 펜싱 에페 단체전에서는 만자로티와 델피노가 주축이 된 이탈리아팀이 빌 호킨스의 영국팀을 결승에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금메달은 만자로티가 마지막으로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이다.
만자로티는 이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여 총 13개의 메달을 획득,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 핀란드의 육상 선수 파보 누르미의 최다 올림픽 메달(12개) 기록을 갱신하였다. 이 기록은 1964년 하계 올림픽 때 소련의 체조 선수 라리사 라티니나에 의해 갱신되었고, 라티니나의 기록도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의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가 갱신했다.
8. 선수 은퇴 후의 삶
2012년 5월 25일 밀라노의 자택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딸인 카롤라 만자로티도 펜싱 선수로 활동했으며 1976년과 198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